본문 바로가기
도서 리뷰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 변신

by 디도11 2025. 2. 18.

1. 벌레가 된 남자, 한순간에 뒤바뀐 삶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의 존재와 소외, 가족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채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이 왜 벌레가 되었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레고르는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나 행복보다 가족의 생계를 우선시하며, 오로지 일에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순간, 그는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가족들은 그를 점점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의 상태를 걱정하던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를 외면하고, 결국 그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그레고르는 인간이던 시절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벌레가 된 후 가족들은 그를 돌보기는커녕 짐처럼 취급합니다. 그는 점점 방에 갇혀 살아가며, 가족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소외됩니다. 그의 방은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가족들은 그의 존재를 점차 잊어갑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점점 쇠약해집니다.

카프카는 이 초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이 사회와 가족 속에서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 때문은 아닐까? 변신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2. 가족이라는 이름의 냉정함, 소외

처음에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그의 변신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에 대한 관심을 잃습니다. 그가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자, 그들은 그를 하나의 짐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그를 혐오하며, 어머니조차도 그를 두려워하고, 유일하게 동정심을 보였던 여동생 그레테도 결국 그를 버립니다.

여동생은 초반에는 그레고르를 돌보려 하지만, 점점 부담을 느끼고 그를 방치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제 오빠를 없애야 해요"라고 말하며, 그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합니다. 가족들은 한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를 완전히 버리고, 그의 존재를 지우려 합니다.

카프카는 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제공한다고 믿지만, 카프카는 가족이 철저히 기능적인 관계일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더 이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 존재는 점점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하고, 결국 버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레고르가 인간이었을 때 가족들에게 했던 헌신은 벌레로 변한 후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과거의 그레고르가 아니라, 지금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그레고르를 바라볼 뿐입니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는 설정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가족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때만 인정받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역할을 잃게 되면, 우리는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3. 무너진 존재, 잊힌 죽음

결국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서 완전히 소외된 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슬픔이 아니라 안도의 순간이 됩니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치운 후, 마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것처럼 일상을 되찾아갑니다. 특히 여동생 그레테는 밝은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마치 그레고르라는 존재가 한때 가족의 일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방해했던 장애물이었다는 듯한 모습입니다.

카프카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회나 가족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때만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그 역할을 잃으면 쉽게 잊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레고르는 한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벌레가 된 순간 가족들에게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죽음조차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갑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사회적 관계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철학적 작품입니다. 인간은 과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사회적, 가족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때만 인정받는 존재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변의 존재들을 얼마나 쉽게 잊고 버리는가? 변신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불안과 사색을 남기는 작품입니다.